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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본은 노동이 가난하기를 원할까?▽〓
닉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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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1-23 07:03:54
내용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7-07-24 08:26:52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노동이 한국 재벌들에게 손을 내밀고 “우리 함께 잘 사는 방법이 있으니 공존과 번영을 선택합시다”라고 제안한다면, 재벌들은 과연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 하는 상상 말이다.

하지만 그 상상은 5분도 안 돼 ‘그럴 리 없다’는 비관적 결말을 맞게 된다. 역사적으로 자본과 노동이 공존과 번영을 택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이 대립의 출발은 언제나 ‘노동의 빈곤’을 원했던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시작됐다.

역사적으로 자본이 급속도로 덩치를 불렸던 때는 모두 가난한 노동자들이 득실대던 세상이었다.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하루 몇 백 원, 하루 몇 천 원의 임금만 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바글대던 세상이었다.

영국 자본이 초기 축적을 시작했던 산업혁명 때가 그랬고, 한국 재벌들이 덩치를 불렸던 1960~1970년대가 그랬다. 두 시기 모두 자본은 농업을 박살내는 것으로부터 축적의 계기를 발견했다. 영국은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민을 도시로 내몰았고, 한국은

 

악랄한 저곡가 정책으로 전례 없던 이농 현상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도시에는 어떻게든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예비 노동자들이 득실댔다. 이처럼 빈곤한 노동자들이 득실대는 세상, 이것이 바로 자본이 꿈꾸는 세상이다. 이 시기 자본은 노동의 빈곤을 등에 업고 그야말로 마음껏 노동을 착취했다. 오늘날 세계와 한국을 주름잡는 거대 자본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덩치를 불렸다.

그래서 재벌들은 노동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면 그 소득이 소비로 이어져 자본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데, 자본은 이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자에게 삶의 선택권이 있는 세상을 싫어할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게거품을 물고, 복지 확대를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그들의 본심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본이 시키는 대로, 아무리 적은 돈을 던져줘도 그거라도 받아먹어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경쟁하는 세상을 꿈꾼다.

멍청한 재벌들이 이해를 못해서 그렇지 노동의 빈곤이 극대화되면 결국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다. 그런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면 자본이 만든 물건은 누가 사 준단 말인가? 공급과잉이 경제를 박살낸다는 이 간단한 교훈은 이미 1930년 대공황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진보 경제학자(자본은 그를 사회주의자라고도 부른다) 로버트 라이시가 지난해 낸 책 제목은 『자본주의를 박살내라』라거나 『자본주의를 끝장내라』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구하라』였다. 신자유주의식 착취가 지속되면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을 뿐인데,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의 권리를 강화하는 일은 바로 그렇게 몰락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월가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는 IMF조차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복지를 강화해야 경제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며 진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이치를, 이 지극히 당연한 공존의 원리를 한국 재벌들은 당최 알아듣지를 못한다.

말귀를 이렇게 못 알아들으면 어떡해야 하나? 알아들을 때까지 곱게 설득하기에는 한국 재벌들의 패악질이 너무 심하다. 그렇다면 준엄히 가르쳐야 한다. 노동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저소득 빈곤층의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노동의 투쟁이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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